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콘라드 1세 (문단 편집) == 왕위를 둘러싼 싸움 == 1189년 국왕 기는 살라딘에게 석방되었다. 하나 남은 예루살렘 왕국의 영토인 티레로 간 기는 성문을 열어달라 청한다. 콘래드는 기에게 하틴 전투의 패전으로 왕국을 빈사상태로 만들었다며 그가 왕의 자격을 잃었다고 주장하며, 기와 그의 부인인 정식 왕위 계승자 시빌라의 입성을 거부했다. 기는 티레 성벽 밖에서 얼쩡대다 제3차 십자군 원정군이 도착하자 합류하여 아크레 공성전에 참여하였는데,[* 기의 실체를 모르는 원정군은 부하에게 무시당하며 아크레 앞에서 얼쩡이는 기의 군대를 보고 "예루살렘의 왕이 적은 병력으로 대적과 맞서 싸우는데 부하란 놈은 성에서 벌벌 떨고 있다."고 생각해서 모두 거기로 가 합류해버렸다. 영웅적인 활약으로 티레를 지켜낸 콘래드가 오히려 무시당한 아이러니.] 공성전 와중에 1190년 시빌라와 그 두 딸들이 병사하면서 왕위 계승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졌고, 콘래드도 이 싸움에 뛰어든다. 각지에서 아이유브 제국군을 격퇴하고 용명을 떨친 콘래드는 고위층의 지지를 받게되었다. 본국의 유럽 친척들의 지원도 받은 콘래드는 마침내 예루살렘 왕국의 [[아모리 1세]]의 딸, 시빌라의 이복 여동생이자 다음 왕위 계승자 이사벨 1세와 결혼했다. 본처 테오도라가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에 중혼 여부가 문제될 수 있었지만, 돌아오지 않는 그를 상대로 이혼 신청이 동로마 쪽에서 있었기에 그다지 큰 문제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는 왕이 될 자격을 손에 넣었지만, 여전히 기의 파벌은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으로 즉위 할 수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